아이들이 유치원생이던 시절, 오랜만에 가족들이 식탁에 앉아 함께 치킨을 먹을 때의 일이다.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아빠, 치킨은 어디에서 왔어요?'라고 묻는 아들의 질문에 무심코 '응, 치킨집에서 왔지.'라고 대답하였다. 한창 궁금한 것도, 호기심도 많은 나이의 또래들이 그러하듯 아들 녀석의 질문도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치킨의 집은 어디에요?', '양계장이 뭐에요?', '치킨도 아빠 엄마가 있어요?', '그럼 치킨은 어떻게 살아요?'. 진땀을 빼며 닭의 유통 과정과 양계(養鷄) 방법을 설명하는 나에게 아들은 눈물을 글썽이며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던졌다. '아빠, 치킨이 불쌍해요.'. 그러면서도 욕심껏 양손에 쥔 닭 다리를 놓지 않는 녀석의 모습이 귀여워 그때는 그저 웃고 말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들의 질문과 마지막 말에 세계시민교육의 많은 것이 담겨있었다.

최근 국제사회의 핵심적인 교육 의제로서 '평화롭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세계시민성(Global Citizenship) 함양'이 부각되고 있다. 교육계 역시 인류 보편적 가치와 인권, 문화 다양성을 폭넓게 이해하고 이를 실천하는 시민 양성을 위한 "세계시민교육"을 강조해왔으나 교실 속 논의에 갇혀서 일상과 유리됐다는 비판을 종종 듣고는 한다. 이제 시각을 조금 달리할 때다. 교육 현장이 아닌 우리의 일상 속에도 세계시민교육을 마주할 열쇳말들이 곳곳에 존재한다. 아들의 질문으로 인해 되새겨 보았던 치킨의 유통 과정 속에도 인권과 노동권, 동물권 등 다양한 세계시민교육의 요소들이 숨어있다.

우선 양계장과 같은 축산현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의 현황과 처우 문제다. 상시 인력난을 겪고 있는 한국의 축산현장에서는 그 대책으로 수많은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적합한 처우와 보상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2018년 한 양계장의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하던 외국인 노동자가 작업 도중 숨졌다는 뉴스는, 어쩌면 우리가 우리의 시선이 미치는 곳만을 대상으로 인권과 노동권 등의 기본권을 외쳐왔던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한다.

동물권(權)과 동물복지 문제도 있다. 굉장히 생소한 개념 중 하나인 동물권은 동물 역시 생명권과 함께 고통과 학대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개념이다. 한정된 공간에서 대규모 밀집 방식으로 사육하는 공장식 축산은 효율성이라는 명분 아래 동물에게 불필요한 스트레스와 고통을 준다. 고기를 먹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식탁에 오르는 동물들에게도 쾌적한 사육환경에서 길러질 권리가 있지는 않은지 한 번 고민해보자는 것이다. 치킨이 불쌍하다고 눈물을 글썽이던 아들의 울먹이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이밖에도 분뇨와 악취로 인한 환경오염 문제와 다양한 닭 조리법 속에 담긴 문화 다양성 등 치킨이 우리의 식탁에 오르는 과정 속에서 다양한 세계시민교육의 주제들을 만나게 된다. 이처럼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접하고 행하는 그 모든 것들이 세계시민교육의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제 우리 교육자들이 할 일은, 사람들이 일상 속 세계시민교육으로 향하는 문을 열어주는 것이다. 익숙한 일상 속에서 세계시민교육과 관련된 다양한 소재를 발굴하고, 이를 활용한 교과목 및 교육과정을 개발해 학생과 시민들이 더욱 친숙하게 세계시민의식을 함양할 수 있도록 도울 필요가 있다. 학생과 시민들이 스스로 일상 속 세계시민교육을 찾고, 생각하며, 행동할 수 있는 기반과 환경의 조성도 우리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이다.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라 했다. 식탁에서 시작한 작은 세계시민교육 실천이 전 지구적 과제를 인식하고 참여하고자 하는 글로벌 리더 육성으로 이어지는 그 날을 기대해 본다.


집필: 김정겸(충남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2022-09-28

출처: 대전일보 http://www.daejonilbo.com/news/articleView.html?idxno=2025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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